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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해 삽시다

글쓴이 : 아틀란타제… 날짜 : 2018-10-23 (화) 22:28 조회 : 16
설교일 : 2018년 10월 14일
설교자 : 서삼정 담임목사님
본문말씀 : 마태복음 19:27-30


예수를 위해 삽시다. 마 19:27-30
  
예수를 위해 삽시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 가에 따라 그 인격이 달라지고 그 운명이 달라진다.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성공했는 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소원을 품고 사는 가에 달려 있다.
  
현대인들은 추구하는 것이 너무도 자기 위주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나, 나, 나만을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같은 현상이다.
자기를 위해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자기의 기쁨, 자기의 만족, 자기의 행복, 자기의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 모신 사람은 잠시 세상에 눈이 어두었다가도 중심 깊은 곳에서 그리움처럼
일어나는 소원이 있다.
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붙잡고 싶은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것은 에수님 자신이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명예도 돈도 자아도 다 팔아서라도 가지고 싶은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하게 된다.
오늘 아침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터치해 주실줄 믿는다.
이런 중심을 회복해 주실줄 믿는다.
  
예수님은 누가 복음 12 장에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부자는 그 해에 풍년이 들어 많은 소출을 얻었다.
창고를 더 확장하고 곡식을 그 창고에 쌓아두고 스스로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가 그렇게 애써 준비한 것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셨다.
사실 우리들도 가끔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꿈을 꿀 때가 있지 않는가?
열심히 일해서 한 재산 모아서 남은 여생 쓸 돈을 충분히 쌓아놓고 이제는 편안하게 쉬면서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자 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가?
이런 꿈을 꾸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궁극적인 소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만을 위해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라고 하셨다.
  
오늘 아침 이런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좀 모아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자녀들 성공하고 하는 세상 사람과 같은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정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우리 마음에 가진 소원이 무엇인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어떤 유명한 사회학자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했다.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진실하게 되고 하나님 만날 생각을 하게 되고 심판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는 젊은 부자 청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 젊은이는 돈도 많았고 율법도 잘 지켰고 영생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아주 이상적인 청년이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 저는 어릴 때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아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네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은 돈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 ” 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몹시 놀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으리이까? 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느니라 하셨다.
  
이 때 베드로는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아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을수 있겠씁니까?
물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대답해 주셨다.
이제 예수를 위해 사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려 한다.
  
예수를 위해 살아라.
27절 “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
먼저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부모 형제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를 위해 살기 위해서는 이처럼 먼저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족도 사업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우선 순위가 예수님이 먼저 라는 것이다.
가족보다 사업보다 예수님이 먼저이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자에게 요구 되는 것은 예수님이 첫째여야 한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의 욕심을 버려야 하고 자기의 감정을 버려야 하고 자기의 주장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앞서 16 장에서도 먼저 자기를 버릴 것을 말씀하셨다.
마 16:24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를 위해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 먼저다.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예수를 위해 살려고 해도 실상은 자기를 위해 살게 된다.
예수를 위해 하는 일도 자기의 생각대로 감정대로 자기의 유익을 따라 하려고 하게 된다.
예수를 위해 섬기는 것도 자기의 생각대로 감정대로 자기의 유익을 따라 하려고 하게 된다.
예수를 위해 바치는 것도 자기의 생각대로 감정대로 자기의 유익을 따라 하려고 하게 된다.
  
구약 성도들은 율법 하에서 자신을 바쳤다.
첫 열매와 십일조를 바쳤다.
또한 율법이 청하는 여러 가지 헌물을 바쳤다.
특별히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려고 할 때는 나실인의 규례대로 바칠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은 은혜 아래서 자신을 바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난 자는 다 영적인 나실인이다.
신약 성도들은 은혜 아래 있는 우리 전부를 바치기를 요구하신다.
율법의 요구보다 은혜의 요구는 더 차원이 높고 크다.
우리는 십의 일을 구별하여 드릴뿐 아니라 십의 9 도 다 주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도들은 청지기로 말씀했다.
청지기는 관리자이다.
청지기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물질과 재능을 관리하는 자다.
우리는 물질의 주인이 원하시면 물질의 전부라도 기꺼이 바쳐야 한다.
  
남부의 가장 큰 부호였던 Turner 는 일생동안 십의 9조를 바치며 살았다.
한 번은 공항에서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기자가 물었다. “왜 그렇게 바쁘십니까?”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이미 부자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합니까?”
그는 “주님을 더욱 더 잘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했다.
  
우리는 돈을 벌어도 주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서 벌어야 하고
돈을 쓰는 것도 주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맡겨주신 탈렌트를 주님을 위해 이윤을 남겨야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두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
주인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주인을 위해서 보다 더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잘 했다 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이 진짜 예수를 위해 살고자 원하면 자기를 버려야 한다.
여러분, 예수를 위해 살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자기를 버립시다.
  
* 예수를 위해 살려면 예수를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 앞서 가셔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한다.
예수님은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시다.
예수님이 앞서야 한다.
예수님의 역사가 앞서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 때 언제나 예수님은 따라가야지 앞서서는 안 된다.
내 생각 내 주장 내 행동이 앞서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요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다.
  
예수님을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다 각기 크던지 작던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신 책임이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따라 가는 것은 진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가 무거워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다.
내 인생에 주어진 십자가, 주의 교회를 위해서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 그것을 지고 주를 따라가야 한다.
  
2. 예수를 위해 산 사람은 복이 있다.
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우리가 무엇을 얻을수 있습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몇 가지로 대답하셨다.
  
먼저는 내세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것을 말씀하셧다.
예수님을 위해 산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하리라고 하셨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세우실 새로운 세상을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지나간다.
그리고 영원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
그 때에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다.
그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 하리라 하셨다.
그 말씀대로 계시록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니 천국 성벽 위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고 하셨다.
계21:14]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간 제자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 때 하늘 나라에 가서 받을 상급이 분명히 있다.
그 상급은 영원한 것이며 그 영광이 영원한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산 사람은 이 땅에서도 여러 배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29절 “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도 예수를 위해 희생한 것보다 여러 배를 주신다고 하셨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른 이후에 주님이 저들의 인생을 책임 져 주셨다.
저들은 주님이 주시는 것을 먹고 살았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주의 일을 하며 살았다.
  
오늘 우리가 주를 위해 희생한 것이 있다면 손해 본 것이 있다면 주님이 다 갚아 주실 것을 믿어라.
주님은 우리에게도 갚아 주시고 우리의 후대에도 갚아 주신다.
주를 위해서 산 것은 결고 헛되지 않는다.
갚아 주실 때는 후하게 갚아 주신다.
최소한 백배로 갚아 주신다.
[막10: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주를 위해 산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하셨다.
상속한다는 말씀은 주님께로부터 받는다는 말씀이다.
이는 주님을 위해 산 공로로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수 있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예수를 믿는 자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칠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예수를 믿는 자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앞서 16 장에서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다시 찾으리라 하셨다.
예수님을 위해 육신의 생명을 바칠수 있는 믿음의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예수를 위해 이 세상의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얻게 된다.
오늘의 삶이 오늘에 끝나지 않고 영원에 이른다는 것을 잊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의 행한대로 그 날에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누가 이런 놀라운 복을 받을수 있는가?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은 결코 받을수 없는 복이다.
예수를 위해 산 사람만이 받을수 있는 복이다.
  
  
오늘 아침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터치해 주셔서 우리 중심 깊은 곳에서 소원하는 것이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그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과거에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눈물 흘리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했던 그 각오가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이 말씀이 우리 중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를 위해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