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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랑을 두려워 말라

글쓴이 : 아틀란타제… 날짜 : 2019-09-04 (수) 19:15 조회 : 40
설교일 : 2019년 9월 1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마태복음 14:22-36


삶의 풍랑을 두려워 말라.  마태복음 14:22-36

  

삶의 풍랑을 두려워 말라.

우리는 삶에서 늘 풍랑을 만난다. 

인생은 항해 하는 것과 같다.

항해를 해 보면 바다에는 항상 파도가 있다.

그러다가 가끔은 큰 풍랑이 일어난다.

이처럼 우리 삶의 항해에도 늘 파도가 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언제나 있다.

그러다가 때로는 삶의 큰 풍랑을 만난다.

건강의 풍랑, 경제의 풍랑, 가정의 풍랑, 사회생활에 풍랑..을 만날 때가 있다.

믿는 사람은 교회생활의 풍랑도 만난다.

  

풍랑은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다 만난다.

그러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풍랑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이기는 방법도 다르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풍랑을 두려워하고 자기 힘으로 이기려 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풍랑을 이긴다.

어느 신앙인이 말하기를 기독교 신앙이란 폭풍이 일어났을 때 폭풍이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을 가슴에 안고 불꽃 같이 달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아키노 대통령의 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허기진 오천 군중에게 기적의 떡을 먹이신 후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님은 오천 군중들을 돌려 보내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게네사렛으로 가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신 후에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다.

해가 저물 때에 제자들의 배는 바다 가운데 있는데 큰 풍랑이 일어나서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었다.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쯤에 물 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으나 예수님께서는 즉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다.

오늘도 예수님은 삶의 풍랑을 만난 우리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  하신다.

  

1. 예수님이 보고 계시니 두려워 말라.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떨어졌다. 바다 한 복판에 이른 것이다.

그 때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고 물결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므로 제자들은 고난을 당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계셨다.

본문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보고 계셨다고 했다.

 6:48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뭍에 계셨으나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괴롭게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셨다.

예수님은 멀리서도 보고 계셨다.

예수님은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다.

우리가 고통 당하는 상황을 보고 계신다.

우리가 병으로 고통 당할 때 보고 계신다.

우리가 마음 아파서 괴로워 할 때 보고 계신다.

우리가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보고 계신다.

우리가 낙심하고 있을 때 보고 계신다.

  

우리가 진퇴양난 의 상황을 만났을 때 보고 계신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해는 저물었고 배는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 바다 가운데 있는데 물결이 거슬렸다.

낮에 풍랑을 만나도 두려운데 밤에 만났으니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 바다 가운데 있으니 돌아설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입장이었다.

  

우리가 삶의 풍랑을 만날 때 이와 같은 때가 있다.

삶의 물결은 거세게 일어나 나를 거스리는데 사방을 돌아봐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고 상황은 뒤로 돌아설수고 없고 앞으로 나갈수도 없는 진퇴양난일 때가 있다.

바다 한 가운데서 홀로 풍랑을 만난것처럼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물결은 계속 나를 거스린다.

모든 환경과 상황이 내 편이 아니고 나를 대적하듯 나를 거슬린다. 

그래서 밤사경이 되도록 혼자서 고민하며 두려워하며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인생의 노를 괴롭게 저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믿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나를 알고 계신다. 

힘겹게 인생의 노를 젓는 나를 보고 계신다.

예수님이 우리의 괴로움을 보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2. 예수님이 찾아오시니 두려워 말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멀리서 제자들의 힘겹게 노 젖는 것을 보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셨다.

우리의 괴롭게 노젓는 것을 보고 계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언제나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합당한 시간에 찾아오신다.

우리는 너무 지체하는 것 같고 늦은 것 같이 느낄 때가 있을지라도 주님은 가장 합당한 시간에 찾아오신다.

  

주님은 가장 합당한 시간에 합당한 방법으로 찾아오신 것이었다.

  

제자들을 언제 찾아오셨는가? 

밤 사경에 찾아오셨다.  그 때가 가장 최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찾아오시는가? 

물 위로 걸어 오셨다.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인줄 알았다.

풍랑이 두려워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이 어려움 때문에 눈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된다.

사람이 문제에 빠지면 주님이 찾아오시는데도 모르고 유령인줄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원래 힘을 내라는 뜻이다.

절망의 바다에서 만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오 용기를 주시는 분이셨다.

  

고아였던 에드워드 모트는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가구 공장에서 일하면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을 마친 후에도 그를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이 없으므로 런던 거리를 배회했다.

그의 깊은 고독의 바다에서 예수님이 그를 만나 주셨다.

어느 날 우연히 교회에 들어갔다가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자기도 의지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예수님을 의지하고 열심히 일해서 그 공장 직공에서 사장까지 되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가 시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오늘도 풍랑 만난 사람들을 찾아가 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다 같이 해 보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3. 예수님이 풍랑 위를 걷게 하시니 두려워 말라. 

2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 위기는 믿음을 사용할 기회다.

베드로는 감히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짜 주님이시면 나도 물 위를 걷게 하소서 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오라! 하셨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배에서 내려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갔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라.

물 위로, 그것도 풍랑이 아직 잔잔해 지지 않는 넘실 거리는 풍랑 위로 한 발씩 한 발씩 걸어갔다.

  

다른 제자들은 다 배에 있는데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인류 역사상 물 위를 걸어본 사람은 오직 베드로 뿐이다.

  

제자들처럼 배에 앉아서 물 위롤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는 것도 은혜다.

풍랑을 만났을 때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믿음은 풍랑 위를 걷는 것이다. 

그럴 때 상황을 뛰어넘는 최상의 은혜를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풍랑을 만났을 때에 풍랑에서 건져 주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랑 위를 믿음으로 걷게 해 주신다. 

위기는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걸을수 있는 기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을수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하는 일도 할 것이요 나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하셨다.

엄청난 약속의 말씀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 풍랑 위를 걸을수 있었다.

그러나 풍랑을 바라볼때는 물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문제 위를 걷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바라볼때는 문제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비록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졌지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손을 잡아 주시므로 다시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때로는 우리도 주님만 바라보지 않고 현실을 보다가 물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때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우리 손을 붙잡고 물 위를 함께 걷게 하신다.

  

갈릴리 바다 풍랑 위를 걸어본 사람은 베드로 뿐이지만

인생의 풍랑을 믿음으로 걸은 사람은 너무도 많다.

믿음으로 죽을 병을 다스린 사람, 믿음으로 극한 상황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은 너무도 많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걸을 차례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시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다 같이 저를 따라 믿음으로 반응해 봅시다. 

주님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걷겠습니다 

주님 손 잡고 풍랑 위를 걷겠습니다

믿음으로 병을 다스리겠습니다. 믿음으로 문제를 다스리겠습니다.”

  

4. 예수님이 목적지까지 가게 하시니 두려워 말라.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 예수님이 목적지까지 가게 하신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자 풍랑은 잔잔해졌다.

그 분의 실존 앞에 풍랑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 제자들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는 곧 가려던 바다 건너편 게네사렛에 이르렀다. 

풍랑을 만났어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목표를 향해서 가고 있을때 풍랑을 만났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이 원하는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풍랑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목적지에 예수님은 반드시 이르게 하신다.

풍랑이 거세게 일어나고 금방 죽을것 같아도, 결코 풍랑이 주님이 가라고 하신 길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때로는 제자들처럼 내 인생의 배가 침몰해 가는데 도대체 예수님은 왜 도와주지 않으시는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인생 길을 가는데 왜 도와주지 아니하시는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님의 목적이 있다.

제자들이 풍랑을 통과하고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아마도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랐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이미 당신을 향한 목적을 정해 놓으셨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풍랑도 하나님의 그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막을수 없다.

우리가 때로는 풍랑 때문에 지체하게 되고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풍랑이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해 가고 있다.

우리 인생 끝나면서 뒤돌아볼때 결국 그 목적지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놀라게 될 것이다.

  

가야 될 목표를 정해 주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 목표에 이르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다.

우리 인생이 있게 하신이도 주님이시고 살게 하신이도 주님이시다.

우리를 저 영원한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이도 주님이시다.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인생의 풍랑도 주님의 목적을 가로막지 못한다.

인생의 풍랑이 클수록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게 되고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평온할 때는 말 없이 동행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는 풍랑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역사하신다.

지금 당신은 인생의 풍랑을 만났는가?

인생의 풍랑을 두려워하지 말라.

아무리 감당하기 어려운 풍랑이 일어나도 주님이 목적지까지 가게 하신다.

삶의 풍랑을 두려워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