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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은혜다

글쓴이 : 아틀란타제… 날짜 : 2020-02-26 (수) 20:20 조회 : 230
설교일 : 2020년 2월 23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베드로전서 4:1-2


고난도 은혜다. (벧전 4:1-2)

  

고난도 은혜다. 

지난 주일에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자고 말씀을 전했다.

우리가 오늘을 온전히 살려고 할 때 고난 이라는 복병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은 그 고난도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은 고난도 은혜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성경은 아무리 축복 받은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아무런 어려움도 문제도 없이

살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약점이 없는 완전한 인간은 없다.

아무리 승리한 사람도 아무런 상처 없이 승리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실패해 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병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죄 짓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큰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도 넘어져 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자녀들이 잘못할 때 하나님이 징계로 주시는 고난이 있다. 

이런 때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그 징계가 오히려 은혜가 된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서 내가 주의 율례를 배웠다 고 고백하게 된다.

  

또 다른 경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금같이 단련하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이 잇다.

이런 고난을 당했을 때는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는 줄 믿고 인내하면 

우리도 욥처럼 정금같이 귀한 그읏으로 단련되고 욥처럼 갑절의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된다.

  

또 다른 경우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고난인데 우리가 믿음 때문에 사명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이런 고난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면 고난은 큰 상급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 기회가 된다.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우리가 고난에 대해서 가져야 할 태도는 이 고난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있다는 것과 이 고난은 더 큰 은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에는 항상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난다.

파도가 일어나면 실력 없는 뱃사공은 뭍을 찾아 돌아오기에 바쁘지만 유능한 요트 경주자들은 돛을 올리고 신나게 바다 위를 질주한다.

셔핑 하는 사람도 파도를 즐긴다.

우리의 삶 이라고 하는 항해에서도 고난 이라고 하는 파도가 일어난다.

마치 파도를 즐기는 셔퍼들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고난의 파도를 타면 고난을 통해 성장하게 되고 고난을 통해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더 나아가 고난이 은혜의 도구임을 깨닫고 노래할수 있게 된다.

  

1.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운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을 배우셨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 5:8)

  

그리스도는 정말 순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순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복음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고 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이렇게 죽을 정도로 고민하시다니 ..

너무 고민이 되셔서 할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오소서. ” 하셨다.

이 잔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다. 이사야 51:22

하나님의 진노의 잔 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떠오르게 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의 고난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슬퍼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 우리 대신 죄인이 되는 것이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며 연합되어 있으신 분이 잠시나마 하나님과 끊어지는 고통이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창으로 찔리신 그 육체적인 고통 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민과 슬픔과 통곡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였다. 

예수님은 순종을 결단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다.

  

* 우리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운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다면 오늘 우리도 

순종을 배우기 위해서 고난을 통과하여야 할 것이다.

순종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다.

배워야 한다.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고난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하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고난이 없었다면 이 정도라도 순종의 사람이 되었을가?

여러분은 모르지만 저는 고난 때문에 이 정도라도 깨어지고 이 정도라도 순종의 심성을 배웠다.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울수 있기 때문에 고난도 은혜다.

  

2.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해 준다. 

1-2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고난으로 죄를 그치게 된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라 고 하셨다.

죄는 그리스도께서 끝장 내신 것이지 우리가 고난 받는다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죄를 끝장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가 자기의 것이 된 것이 더 확실하게 믿어지고 경험되게 되는 것이다.

  

고난은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지 어렵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쉬운 길로 가려고 하지 힘드는 길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가려고 하지 좁은 길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편안 할 때는 육체의 정욕의 지배를 받는다. 

고난이 없이 편안할 때는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는 줄 알고 자기 지식, 자기 재물, 자기 건강을 의지한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게 되면 자기의 약함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있는 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 지어다 

고난을 받을때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큰 기적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과 함께 고난을 기쁘게 받을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고난이 힘들지만 고난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고난도 은혜이다. 

기꺼이 고난 받을수 잇는 것은 가장 큰 하나님의 능력이다.

  

3.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신다.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난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은혜를 주신다.

평안할 때는 평안할 때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고난의 때에는 고난에 필요한 은헤를 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때에 합당한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평소에 받지 못한 특별한 은혜를 고난의 때에 주신다.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잠간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신다 고 하셨다.

그 누구도 고난 없이 온전해 질수 없다.

고난 이라는 학교에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케 빚어 가신다. 

흠집은 온전케 하고 모난 것을 깎으시면서 온전케 하신다.

무딘 것은 날카롭게 해 주시고 약한 것은 강하게 하신다. 

약점과 모순이 많은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온전케 하신다.

  

온전케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굳건하게 하시며 .. 굳건하지 못한 우리를 잘 흔들리는 우리를 굳건하게 만드신다.

세상 풍파와 유혹에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강하게 하시며 .. 강하지 못한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신다.

사탄을 이기게 하시고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죽음도 이길수 있도록 강하게 만드신다.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우리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터는 말씀이다. 

우리가 서 있는 터가 점점 더 견고해져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세상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은 인생을 살게 하시고 일을 하게 하시고 믿음을 갖게 하신다.

  

우리가 실제로 여러 성도들을 대해 보면 고난을 많이 겪은 성도들에게서는 아무 고난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되고 발견하게 된다.

주의 종들도 고난을 많이 겪어서 깨어진 분들과 그렇지 않는 분들은 뭔가 차이가 있다.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자아가 깨어지고 깨어지면서 속 사람은 더 굳건하고 강하고 터가 견고해져서

깊은 영성과 든든한 신앙인격을 가진다. 

  

* 약함도 은혜다.

바울사도 역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유대인들의 핍박, 이방인들의 핍박, 배고픔, 추위, 매맞음 등 사망에 이르는 고통을 당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신의 약점과 장애 때문에도 큰 고난을 겪었었다.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있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수 없으나 학자들은 눈병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들은 간질병이라고도 한다.

무엇인지 알수 없으나 그것이 너무도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에 찌르는 가시라고 표현했다.

  

바울은 그것 때문에 육체적 고통이나 괴로움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괴롭고 힘들었다. 

바울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사도였다.

또한 그는 병자들을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리는 큰 능력을 행하는 종이었다.

그런 바울 사도가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처럼 보였을가?

바울을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는 성도들 때문에도 마음이 무겁고

또한 바울을 적대시하고 비판하는 자들 때문에도 이 문제가 마음에 큰 고통이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이 가시를 없이 해 달라고 세 번을 기도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가시를 없에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 말씀은 이미 주신 은혜가 족하다는 말씀이시다.

그는 셋째 하늘로 그 영이 들려올라 가 가히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참으로 그가 받은 은혜가 이미 너무 많았다.

오늘 우리도 고난을 받을 때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헤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고난만 보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라. 

해결되지 않는 문제, 응답받지 못한 일만 생각지 말고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라.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할수 있을 것이다. 

다 같이 해 봅시다. “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때로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해야 한다.

  

또한 바울 사도에게 하신 이 말씀은 찌르는 가시까지라도 은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미 온전하지 않는가? 그런데 온전하여 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그 능력이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온전하게 들어난다는 말씀이다.

마치 물이 떨어지는 압력의 힘은 낮을수록 강하게 나타나서 큰 전기 파워가 되는 것과 같다.

만약 바울에게 이런 아픔이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바울을 칭송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가졌던 약함 때문에 우리는 바울을 바울 되게 하신 하나님을 칭송한다.

  

또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를 더 겸손케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기도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고 게속 그에게 머물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함이나 실패를 했을 때에 우리의 태도이다.

  

텍사스에서 한 젊은이가 호텔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게 되어 망하게 되었다.

호텔 방에서 자살을 하려고 약을 들고 눈을 감았을때 어릴적 어머니가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네 부모는 너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너의 피난처요 요새가 되신다"

그는 그 말씀에 힘을 얻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투자하신 돈을 모두 날리고 부도를 낼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자살을 하려다가 어릴적 어머니가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죽으려 했던 저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반드시 원금과 이자까지 여러분에게 갚겠습니다."

투자가들은 이 젊은이의 말에 감동을 받고 사업을 계속할수 있도록 더 투자를 해 주었고 

그 젊은이는 마침내 크게 성공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힐톤 호텔의 창업자인 콘라드 힐톤 이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는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고 만져 주시고 안아 주신다.

주님은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