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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글쓴이 : 아틀란타제… 날짜 : 2020-03-05 (목) 03:40 조회 : 290
설교일 : 2020년 3월 1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시편 46:1-11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시 46:1-11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특별히 우리가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본문은 환난을 당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의 멧세지다.

종교개혁자  말틴 루더와 멜랑톤은 본 시편을 통하여서 새 힘을 얻고 환난과 두려움에 맞서서 싸워 승리했다.  그들은 본문의 말씀을 배경으로 찬송가 가사를 지었는데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도들이 이 찬송을 통하여 환난이나 두려움에 맞서 싸울수 있는 힘을 얻었다.

본문은  예루살렘 이 원수에게 포위당한 큰 환난에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을 노래한 시로 본다. 
당시 앗수르는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엇다. 
이 때 유다의 왕이 된 히스기야는 부왕때부터 섬겨오던 앗수르에 반기를 들고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된지 14년 되던해에 앗수르의 산헤립은 랍사게 등 장수들과 군대를 보내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게 했다.
랍사게는 온갖 말로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을 협박하고 항복을 요구했다. 
이 때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기도부탁을 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해 주셨다.
“너는 저 앗수르 군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 내가 이 성을 지켜 구하리라. “
이 말씀을 하신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떤 앗수르 군 18만 오천 명을 다 죽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랍사게를 포함하여 용사 대장 군병 모두  다 송장이 되었다. (왕하 18 장 19 장)
앗수르 왕 산헤립은 얼굴이 뜨거워서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자기의 두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앗수르는 그 일로 세력을 잃고 내리막 길을 걷게 되었다.
8절 “하나님이 원수의 땅을 황무케 하셨음이라.” 
이 엄청난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 찬송한 내용이 본 시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
이 시편은 세 부분으로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시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1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7절에서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11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이처럼 이 시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는 것으로 마친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누구나의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의 피난처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피난처시다.
어떻게 피난처가 되시는가?

 *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때에도 하나님께 피할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3 절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틀란타는 자연 재해가 거의 없는 안전지대다.
그러나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토네이도 와  스나미 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정말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노는 모습은 영상으로만 봐도 너무 두렵다.
만약 우리 눈 앞에서 바닷물이 치솟고  땅이 변하고 산까지 흔들려서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본다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울가? 

그러나 우리는 그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을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지축이 흔들리듯 요동하고 산이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은 흉용하게 일어나서 모든 것을 다 뒤엎고 삼킬 것 같은 그런 때에도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계시면서 다스리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계뿐 아니라 세상사와 우리의 환경이 요동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고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리는 것처럼 ‘  시대적인 문제들과
우리 개인적인 환경의 문제들이 일어나서 요동칠 때가 있다.
문제와 환난의 파도가 크게 일어나 솟구치는 것을 보면 마치 모든 것을 삼킬 것 같다.
지금 한창 퍼져가고 있는 코로나 19 도 뉴스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온 인류를 다 병들게 하고 파괴할 세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다.

이제 제가 앞부분을 말하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화답해 봅시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
 화답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  

 *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적적인 은총을 베푸신다.
4절 “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이 말씀을 주석가들은 실로암 못으로 들어오는 시냇물을 가르친다고 본다.
이 시냇물이 실로암 못으로 흘러가도록 히스기야왕이 이 때 지하수로 공사를 햇었다.
예루살렘 성의 물공급은 성 밖에 잇는 기흔 샘이었다.
히스기야는 기흔 샘을 봉하고  지하수로를 만들어서 그 샘물을 성내로 끌어들여  실로암 연못으로 연결했다.
그래서 성밖의 적군들은 물이 없어서 곤란하게 하고 성안에는 풍성한 물이 있었다. 
여기에 말하고 있는 한 시내는 실로암 못으로 흘러들어가는 고요한 물의 흐름을 가르친다고 본다.
조용히 흐르는 실로암 시냇물은 앞서서 바닷물이 뛰놀고 넘치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성 밖에서는 요동하는 물과 같이 적군들이 에워싸서 고함고함 치고 있었으나
성 안에는 고요히 흐르는 시냇ㄱ물과 같은 평화와 안정이 있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산이 흔들리고 요동하고 바닷물이 치솟고 뛰놀고 넘치는 것처럼 이 세상이 혼란하고 흔들려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평안을 누릴수 있도록 내적인 은혜도 주시고 마음의 평강도 주시고 삶에도 기적적인 은혜를 베푸신다.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5절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니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하나님이 계신 성이 흔들릴수가 없다. 그 성은 견고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 중에 계시니 성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루살렘 성이 앗수르의 군대에 에워싸여서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이 그 성에 계셔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을  하룻 밤 사이에 다 죽이시고 새벽에 나가보니 다 송장이 되게 하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떤 때는 밤을 지새워야 할 때가 잇다.
이 밤에 꼼짝없이 죽었다 싶어서 고민하고 몸부림치다  새벽에 일어나 보면
우리를 괴롭히던 문제를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우리를 괴롭히던 원수를 물리치시고 밤새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했던 문제들을 싹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감히 적군이 감히 문제가 감히 사탄이 건드리지 못하고
새벽에는 송장처럼 되어 버린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믿습니까?

그것을 7절에서 다시 말슴하신다.
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사 되신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은 우리의 안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고 도우시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께 피하라. 
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특별히 환난의 때에는 더욱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맡기는 것이다. 
환난을 당할 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의 손길에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과 환난과 우리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는 것이다.
신실한 친구와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시간이 좀 늦어도 기다린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믿는자도 그와 같이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환난을 당할 때 우리의 자연적인 반응은 두려워하고 허둥대고 안절부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 믿음을 발휘해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셨다.

이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나서 두려워하고 절망할 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 때와 같은 말씀을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에게 하셨다.
이 말씀을 히스기야 왕이 백성들에게 한 것 같다.
앗수르의 랍사게는 가진 말로 협박하고 조롱하고 하나님까지 모독하면서 회유하면 두렵게 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고 대꾸하지도 않고 잠잠했다.
그들은 하나님으 말씀을 믿고 히스기야왕이 그들에게 너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한 대로 순종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릴수 있다.
사실 문제를 만났을 때 가만히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분이나 저나 경험해 보았다. 
불평을 하던지 괜히 왔다갔다 하며 안절부절 하는 것이 우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는 것” 은 절대적인 신뢰자의 모습이다.
여러분, 적군이 에워싸고 조롱하고 협박하고 회유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합시다.
여러분,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는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잠 합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신뢰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주시고
신뢰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18만 5천의 원수도 하룻밤에 처리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된다.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된다.

 * 환난 때에 하나님을 부르라.
환난 때에 하나님께 피하는 또 하나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 할 수 없을 때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곧 기도다.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했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부르짖었다. 
왕하 19:19절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환난 때에 기도는 하나님께 보내는 SOS 신호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급할 때 도와주시기 위해서 언제나 보고 계신다.
우리가 환난 때에 하나님께 구하면 평안할 때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다윗은 인생의 모든 고독, 가난, 고난, 환난 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그의 기도에는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들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자기 앞에 계신 아버지처럼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며 호소했다.
때로는 그의 기도가 눈물이 베여 나오기도 한다.
그는 위기 때일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을 묵상했다.
그런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실존을 만나는 경험들을 많이 하였다.
환난 때가 하나님을 만날 가장 좋은 기회이다.
환난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경험들을 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는 병 중에 있을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묵상하다가 하나님께 찬송하였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해서 병 고침을 받았다. 
그래서  “밤에는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고 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처음에는 환난을 보면서 두려워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지만
기도하다 보면 환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된다.
환난 보다 크신 하나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하나님께 집중하게 된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 때 당하거나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생각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며 그의 도움을 요청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만나는 경험과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환난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다.
10절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건져 주실뿐 아니라 이 일로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신다.
우리가 속수무책일 때에라도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실뿐 아니라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참 신이신 것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물을 들고 찾아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히스기야에게도 바쳤다.
 
 * 환난 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이 일 후에 히스기야 왕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부와 영광이 지극하게 되었다.
대하 32: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32: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32: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니라.
사람을 높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 
부하게 하심도 크게 하심도 강하게 하심도 여호와께 있다.

여러분, 하나님이 피난처이신 것을 믿는가?  하나님께 피합니까?
그러면  환난 때문에 하나님이 세계 가운데서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환난 때문에 우리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잠잠히 신뢰하고 기다립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다 같이 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