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_title.jpg


총 게시물 304건, 최근 0 건

예수님은 실족한 자를 일으켜 주신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3-28 (화) 00:38 조회 : 1961
설교일 : 2017.2.12
설교자 : 서삼정 담임목사님
본문말씀 : 눅 17:1-6



예수님은 실족한 자를 일으켜 주신다.

“ 실족“ 은 시험, 실수, 범죄, 넘어짐, 넘어뜨림 을 말한다.

실족케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덫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으로 고의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문제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 실족하지 않을수가 없다.

예수님은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셨다.

실족케 하는 자도 실족하는 자도 다 같이 화가 있다.

그러므로 실족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상처 때문에 실족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삶을 살다 보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 때문에 실족까지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 상처를 받고 실족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도 있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자신이 스스로 부당한 대우와 취급을 당했다고 오해함으로 실족할 때도 있다.

죄 때문에 실족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죄를 범하고 스스로 실족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사람이 죄 짓는 것을 보고 실족하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하는 말만 듣고 알아보지 않은채 실족할 때도 있다.


우리는 실족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

상처는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서나 상처 받은 사람을 위해서 반드시 치유 되어야 한다.

상처를 안고 있으면 상처를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자기를 정당화 하려고 남에게 잘못을 더욱 전가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명수 라는 말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이중적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실족했으면 상처를 치유받고 일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을 실족케 했으면 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실족한 상태로 두시지 않고 일으켜 주신다.

직접 일으켜 주시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주시기도 하신다.


1. 예수님의 사랑이 일으켜 주신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자신이 상처를 입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처 받은 치유자시다.

우리를 죄와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죄인이 되시고 형벌을 받으셨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셨다.


혹시 죄 때문에 실족했는가?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죄 값을 이미 다 지불해 주신 것을 믿어라.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은 죄와 당신이 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 값까지 이미 다 지불해 주셨다.

그 사실을 믿고 일어나라.


상처 때문에 실족했는가?

예수님이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그 자신이 상처를 입으셨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믿는가?


연약함 때문에 넘어졌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을 체휼해 주시는 분이시다.

히 4: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과 똑 같이 시험을 받은 분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해서 실족한 것을 동정하시며 도우시는 분이시다.

동정하신다는 말은 그냥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입장을 통과해 본 사람이 뼈저리느게 느끼면서 긍휼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 자신이 인성을 지니셨을때 시험을 통과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을 이해하시며 긍휼히 여겨 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연약하여 실족 했을 때 친히 찾아가셔서 일으켜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해 관원에게 넘기워지고 심문을 받을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 까지도 멀찌감치 따르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떠나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저들을 찾아가셨다.

마치 저들을 처음 부르실 때와 같은 상황에서 찾아가셨다.

그 날도 이른 새벽에 찾아 가셨고, 그 날도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였다. 그 날도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셨고 제자들이 그말씀대로 그물을 오른 쪽에 내려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시므로 예수님 자신을 알게 해 주셨다.

찾아오신 예수님이 너무 반가웠던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예수님께 나왔다.

예수님은 아무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숯불에 떡과 생선을 구워 놓으시고 먹여 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확인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고 하셨다.

더 나아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하게 될 것 까지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실족한 제자들을 다시 일으켜 주셨다. 


오늘도 예수님은 연약해서 넘어진 양들을 찾아와 일으켜 주신다.

당신이 연약해서 넘어졌는가? 주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은 여전히 당신을ㅇ 사랑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지금 주님의 물음에 대답하기 바란다. “예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실족한 우리들을 이곳에 찾아오신 것을 믿어라.

지금 말씀으로 여러분을 일으켜 주시고 계신다.

주님의 일으켜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너는 나를 위해 죽을수도 있다” 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일어나라.


2.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일으켜 주라.

3-4 절 “ 너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 형제가 네게 잘못하거든 이라는 뜻이다.

누가 나에게 잘못하면 우리는 실족하기 쉽다. 

이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경고하라고 하셨다.

경고는 잘못을 깨달을수 있도록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형제가 나에게 잘못했을때 뒤에서 허물하지 말고 그에게 직접 지적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때 온유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내가 편안하게 말할수 있도록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상대방도 편안하게 받아드릴수 있도록 온유한 말로 해야 한다.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 


*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형제에게 경고할 때는 마음으로는 이미 용서하고 경고를 해야 한다.

그의 회개가 용서의 이유가 아니다.

용서할 근거는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말을 걸기 전에 이미 용서하고 말을 시작해야 한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용서한다고 말해야 서로 실족하지 않게 된다.


*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나에게 죄를 짓고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야 한다.

여러분, 누가 당신에게게 하루에 일곱 번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해 보라.

누가 당신을 탁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돌아서서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면 용서할수 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그렇게 하고, 조금 있다가 또 그렇게 하고 ... 일곱 번, 그것도 하루에 일곱 번을 그렇게 한다면 용서할수 있겠는가?

여기 일곱 번은 일곱만 아니라 무제한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할수 있다.


* 우리가 믿음으로 하면 할 수 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제자들은 몹시 놀라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고 했다. (5절)

제자들은 자기들의 믿음 수준으로는 할 수 없는 줄 알고 믿음을 더하소서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큰 믿음을 주겠다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그들이 가진 믿음으로도 할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은 작지만 확실한 믿음이다.

여러분, 겨자씨 만한 믿음 있는가?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문제의 뿌리를 뽑을수 있다. 

어떤 상처나 실족도 해결 될수 있다.

태산 같은 문제도 옮길수 있다.

한 번 믿음으로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


죤 비비어 목사님이 어느 큰 교회에 한 부서담당 목사로 섬길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담임 목사님을 그렇게도 존경하며 좋아햇는데 나중에는 그 분이 하는 결정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교회로 옮겼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고 고민이 사라지지 않았다.

영혼의 기쁨도 없고 오히려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나는 너에게 한 번도 그 교회를 떠나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너는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그는 그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 담임 목사님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비판적이고 반항적이었던 자기의 태도에 대해서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더니 

담임 목사님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주었다.

비비어 목사님은 그 때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될 것을 더욱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실족케 하기도 하고 실족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를 구하고 일으켜 주어야 한다.


*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도 쓰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실뿐 아니라 우리의 상처까지도 쓰신다.

우리도 상처 입은 치유자로 쓰신다.

상처에서 치유 받은 후에는 상처 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생긴다. 

실족에서 일어난 후에는 실족한 사람을 일으켜 줄 힘이 생긴다.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존 뉴톤은 악명 높은 노예 장사였다. 그러나 그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후에는 구원의 은혜에 누구보다도 감사하는 자가 되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가 지은 이 찬송을 우리가 부를 때마다 그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우리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죠지 뮬러도 16세 때까지 감옥을 수없이 드나들었던 사람이었으나 그가 회개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으로 고아들의 아버지로 살게 되었다.


닉 은 팔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실족했었다.

팔 다리 없이 태어난 자신은 하나님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멀쩡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세상에 왜 나를 보냈을가? 생각하며 화가 났다. 

그래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후 그는 실족에서 일어났다.

닉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기적을 주시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가의 기적이 되면 된다”

과연 그는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이 되어주고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는 오늘날 기쁨에 넘쳐서 행복한 인생을 살면서 불행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상처나 실족은 우리 인생에 오점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잇다.

그러나 예수님이 치유해 주시고 사용해 주시면 주님이 쓰시는 귀한 도구가 된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일으켜 주신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일으켜 주라.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나 실족도 쓰신다.

예수님은 실족한 자를 일으켜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