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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복이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3-28 (화) 05:36 조회 : 1487
설교일 : 2017.03.19
설교자 : 서삼정 담임목사님
본문말씀 : 로마서 14:6-8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복이다.
사람은 그 누군가를 위해서 살 때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나 자녀를 위해서 살 때는  고생을 해도 행복하다.
하물며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은 말할수 없이 가치있고 복된 일이다.
이 세상에서만 아니라 영원히 복된 일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가 되었다. (롬 6:11)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철저하게 예수를 위해 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를 위해 살라고 하신 것이 지나치게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과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를 위해 살라는 말씀은 결코 우리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말씀이 아니다.
결코 우리를 더 힘들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은 주님을 위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를 위해 살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하신 말씀이다.
예수를 위해 살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예수를 위해 살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 더 좋은 삶을 살수 있다.
사랑도 예수님 중심으로 사랑하다 보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누리게 된다.
기쁨도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다 보면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누리게 된다.
행복도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다 보면 참된 행복을 누릴수 있게 된다.
삶을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 예수님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를 위해 살면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풍성한 것을 누릴수 있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복이다.

1. 먹는 것도 예수를 위해 하라.
6절 “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나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말씀은 안식일 문제와 먹는 음식 문제로 논쟁이 일어났을 때에 주신 말씀이다.

날도 주를 위해 귀중히 여겨야 한다.
예수를 위해 날을 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모든 날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날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셨다. 시 118:24
모든 날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정해 주신 날이요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아라고 주신 날이다.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예수를 위해 살면 모든 날이 다 귀중하고 유익한 날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오늘은 예수를 위해 살아라고 주신 복된 하루“ 라고 말하라.

당시 어떤이는 특정 음식에 대하여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이는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먹는자도 주를 위해서 먹고, 먹지 않는자도 주를 위해서 먹지 않는 것이니 서로 비판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한 것이다.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먹어야  유익되고  먹어야 할 가치가 있게 된다.
먹을 때는 단순히 맛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 먹지 말고 주를 위해서 먹어라.
주의 성전인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먹어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저 살기 위해서 먹는 것과 주를 위해서 먹는 것은 가치가 다르고 행복지수도 다르다.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먹으면 감사할수 있게 된다.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해서 먹지 않으면 감사할수 있게 된다.
감사는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우리가 “주를 위해서인가 자신을 위해서인가” 에 달려 있다.
주를 위해서 살면 먹어도 감사하고 먹지 않아도 감사할수 있다.

2. 사는 것도 주를 위해 살아라.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자기를 죽은자로 여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로 여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로 여긴다.

진정으로 자신을 버린자가 되어야 주를 위해 살수 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주님의 생각, 주님의 감정, 주님의 원하는 삶을 살수 없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막연한 일이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 인가? 예수님인가? 를 결단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먼저 결정권이 내게 있는가? 예수님께 있는가? 를 결단하고 결정에 들어가야 한다.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될가를 생각하기 전에 
이 일이 예수님께 기쁨이 될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간증하셨던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신이 영국 켐브리지 대학 석좌 교수로 결정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기뻐서 아내에 연락했더니 아내의 첫 마디는 “당신이 그 대학교 석좌 교수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무슨 유익이 될가?” 였다고 한다. 그 장로님은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좋아하기만 했던 것을 회개했다고 한다.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지 않는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된 것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가? 를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결정하라. 

우리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려고 하면 아무리 채워도 부족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면 부족한것도 족하게 여길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곳에 서 있는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비록 광야라도 감옥이라도 그 곳에 서라.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기뻐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라.
그 어떤 형편에 있던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면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라.
십자가는 방향 표시판이다.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십자가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십자가는 언제나 위를 가르킨다. 이는 영원을 가르키는 것이다.
십자가는 언제나 옆을 가르킨다. 이는 사랑하고 가르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면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심을 알게 될 것이고 예수님이 인도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라.
예수님의 기쁨은 예수를 기뻐하는 자에게 주신다.
세상의 것을 통해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다 함이 없는 무궁한 기쁨이다.

예배도 주를 위해 드려라.
찬양을 불러도 예수를 위해 부르라.
기도를 드려도 예수를 위해 드려라.
말씀을 전해도 예수를 위해 전하라.
헌금을 드려도 예수를 위해 드려라.

무엇을 하던지 예수를 위해 하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하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 된다.
주님이 기뻐하실 때 주시는 것이 참된 선물이 된다.

기쁨도 주님이 기뻐하실 때 주시는 것이 참된 선물이다.
물질도 주님이 기뻐하실 때 주시는 것이 참된 선물이다.
건강도 주님이 기뻐하실 때 주시는 것이 참된 선물이다.
형통도 주님이 기뻐하실 때 주시는 것이 참된 선물이다.

3. 주를 위해서 죽는자가 복되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살 때 기쁨도 보람도 축복도 있지만
주를 위해 산 사람들의 가장 큰 축복은 죽음 이후에 누린다.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 안에서 죽는 자의 죽음 자체가 복되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고 깰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를 위해 죽은자가 더 복되다.
주를 위해 죽은 자들에게는 면류관을 주시기 때문이다.
주를 위해 사는 자들은 죽는 것도 주님께 최고의 영광이 되기를 원하고 기도해야 한다.
죽어서 천당 가면 되었지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의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께 최고의 기쁨을 올려 드리기를 원해야 한다. 

양과 염소는 죽음의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염소는 주인이 죽이려 하는 것을 알면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며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염소를 죽일 때는 발을 묶어놓고 여러 사람이 붙들고 죽인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주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 말 없이 죽음을 받아드린다.
주인이 칼로 목을 찔러도 잠잠히 하늘을 쳐다보고 죽는다고 한다.
예수의 사람들은 죽어도 주님을 바라보며 죽어야 한다.
예수의 사람들은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평화로운 시대데 살면서 주를 위해 죽을수 있는가?
우리가 비록 순교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편안히 죽을지라도 주를 위해서 죽을수 있다.
주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죽는다면,  주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죽는다면
주를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드리면서 살다가 죽는다면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다.

바울의 기쁨과 감사가 무엇 때문이었는가?
주를 위해 사는데 있었다. 
주를 위해 죽는데 있었다. 
그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원한다고 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할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할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죽을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 모두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살기 바란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