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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기쁨이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8-09 (수) 23:14 조회 : 42
설교일 : 2017년 7월 30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요한복음 15:11


주님이 기쁨이다.

성경에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250 여 번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기쁨은 대부분 삼위 하나님과 관계가 되어 있다.

삼위 하나님은 기쁨의 근원이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엄위하시고 근엄하신 재판장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죄인들에게 근엄하신 재판장이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편 16:11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그 충만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주님은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 육신의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은 다 주고 싶어한다.

재물이나 재능이나 건강이나 좋은 성격이나 ..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에게 자신이 가지신 모든 좋은 것을 주시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셨다.

독생자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도 주시고 영원한 기업도 주시고 기쁨도 주셨다.

특별히 오늘은 주님의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예수님 자신의 기쁨을 주신다.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하신 것은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르치신 것이다.

15장 1- 10 절까지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믿는 자와 연합된 것을 말씀하셨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포도나무와 모든 것이 하나이다.

수분도, 영양도, 생명도, 열매도 하나이다.

이처럼 예수 믿는 자는 예수님과 모든 것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었으나 그 연합됨이 실제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한다.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 말씀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주님과 연합된 것을 말씀하신 후에 하셨다.

우리가 존재적으로 주님과 연합되었으나 그 연합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님은 이제 믿는 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15:12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절대적인 사랑은 절대적인 복종이 따른다.

주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복종을 하면서 나타나며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사랑에 더욱 불이 붙게 된다.

이 연합에 대해서 말씀 하신 후 내가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이처럼 연합되었으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있다.

* 주님 자신의 기쁨을 주셨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셨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다.

우리를 그냥 기쁘게 해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다.

주님의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다르다.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며 불완전한 기쁨이다.

그래서 잠언서는 사람이 웃을 때에도 마음에는 슬픔이 있다고 하셨다. (잠언 14:13)

타락한 인간은 어쩔수 없이 존재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슬픔없는 인생, 한숨 없는 인생은 없다고들 한다.

주님의 기쁨은 완전한 기쁨이다.

어두움의 그림자가 하나도 없는 완전한 기쁨이다.

주님의 기쁨은 존재적인 기쁨이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다.

그 기쁨을 우리에게 얼마나 주셨는가?

* 충만하게 주셨다고 하셨다.

충만하다는 말은 우리가 느끼기에 가득찼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예수님 자신의 기쁨을 조금도 남김없이 다 주셨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짐 만 아니라 우리의 슬픔까지 다 짊어지셨다.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의 슬픔은 주님의 어깨로 옮기시고 그 대신 우리에게는 삼위 하나님의 기쁨을 주셨다.

* 성령을 부어 주셔서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주셨다.

실제로 제자들도 성령 받고 나서야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렸다.

오순절에 성령받고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고 하셨다.

이 기쁨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이 기쁨은 생수의 강들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이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기쁨이다.

다윗은 주께서 주신 기쁨을 이렇게 고백했다.

[시4: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2. 주님의 기쁨으로 살아라.

11절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주님의 기쁨을 주신 것은 주님의 기쁨으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기쁨으로 살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의 기쁨으로 살려고 하면 도리어 주님의 근심이 된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세상적인 기쁨을 추구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근심이 생긴다.

그러나 주님의 기쁨은 누릴수록 우리의 심령과 영혼을 기쁨으로 가득채워 주신다.

차고 넘치게 해 주신다.

주님의 기쁨을 우리가 충만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주님의 기쁨을 우리가 충만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더 많은 것을 누릴수 있게 된다.

* 회개하면 기쁨이 회복된다.

회개하면 유쾌한 날을 주시리라고 하셨다.

[행3: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죄는 햇빛을 가리우는 구름과 같이 주님의 기쁨을 가리운다.

그러나 회개는 기쁨을 가로막는 구름을 벗겨주고 눌림에서 자유함을 주며

주님의 기뻐하심을 느끼게 해 준다.

* 의도적으로 기뻐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자신이 그 문을 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주님의 기쁨으로 기뻐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이 기뻐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어떤 딸이 어린 시절에 자기 아버지가 매일 밤 천국에 다녀 온 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대하는 아빠의 모습이 언제나 기쁨충만 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스콧트랜드 뉴 대학의 레이니 학장이었다. 일생을 하루처럼 기쁘게 살았던 그는 “우리 마음의 궁전에 ‘기쁨의 깃발’ 이 휘날리고 것은 지금 그 왕궁에 왕이 좌정하고 계심을 알리는 신호” 라고 했다. 어떤가? 당신 마음의 궁전에 왕이 좌정하고 계신가? 그 신호로 기쁨의 깃발이 높이 휘날리고 있는가?

*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주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게 된다.

성령충만은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해 주시는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