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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빛이시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2-19 (화) 03:38 조회 : 226
설교일 : 2017년 12월 17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요한복음 1:9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요 1:9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말씀이라고 소개한 후에 계속해서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소개하였다.
예수님도 자신을 거듭 생명 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하셨다.
예수님은 유일한 참 생명이시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오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체가 나왔다. 
예수님은 인간이나 고등동물의 생명을 위시하여 가장 작은 미생물, 심지어는 아메바 단세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육의 생명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 곧 영생도 주신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은 대개 이 영원한 생명 곧 영생에 대해서 말씀 하신다.
이 영생은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육의 생명을 부모로부터 나누어 받는것처럼 영의 생명은 예수님으로부터 나누어 받는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히 사는데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각종 종교가 생겨났다.
회교나 힌두교나 불교나 다 영원을 사모하여 생겨난 종교이다.
그러나 모하멧이나 석가는 영원을 사모했지만 영원한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생명이시오 생명을 주시는 자임을 보여주셨다.

1.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4절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다.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빛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단순히 생명의 전달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만 첫 사람 아담을 대신하여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실수가 있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죄인 된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주셨다.
아담 안에서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고 죽게 된 원리대로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시고 살려주셨다.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것이 구원의 원리이다.
이것은 사실 (fact )이다.
아담 안에서 죄인 되고 죽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예수 안에서 죄에서 구속받고 살게 된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요 이루어진 실제이다.
기독교는 이 사실에서 출발 되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역사적 사실이 우리의 것이 된다.
예수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의 사실로 남을 뿐이지 우리의 것은 되지 못한다.

2.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생명을 얻는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신약 성경에는 믿음 이라는 단어를 300 번 이상 사용되었다.
그 모든 믿음 이라는 단어는 구원과 관계되어 사용되었다.
구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구원은 이미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구원은 결코 미완성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은 구원이 내 것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13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태어난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날수 있는가?
우리는 이해할수 없으나 이 일을 성령께서 하신다고 하셨다.  (요 3:5)
우리가 자연 출산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하셨다. (전도서 11:5)
하물며 영적인 출생을 우리는 이해할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거듭나게 해 주신다.

거듭난 영혼은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살게 된다.
이 생명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 가졌던 생명보다 훨씬 더 좋은 생명이다.
첫 사람 아담이 가졌던 영적 생명은 범죄할 때 죽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이 예수의 생명은 이 세상 무엇으로도 얻을수 없다.
선을 행한다고 얻을수 없고 어떤 값을 지불한다고 얻을수 없다.

믿음 외에 다른 조건이 없다. 오직 믿기만 하면 예수의 생명을 주신다.
믿기만 하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생명이라는 말씀이 신약 성경에 120 번이나 나온다.
동시에 이 생명과 관계되어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요한복음에만 98번이 나오는데 다 동사로 말하고 있다.
이는 믿음은 전 인격적인 믿음이어야 함을 가르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적으로도 알고 감정적으로도 느끼고 의지적으로도 받아 드려야 한다.
예수의 생명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3. 예수의 생명을 받은 줄 믿고 살아라 
요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 예수의 생명을 받은 증거가 믿음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하셨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가?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난 것 이 사실이다. 
곧 하나님이 낳은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난 자이다.
혹시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적인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믿기 바란다.
먼저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에 믿고 , - 믿고 나가다 보면 감정의 변화도 온다.
우리가 구원 얻는데 있어서 사실 fact , 믿음 faith,  감정 feeling 의 순서는 언제나 바뀌지 않는다.
동시에 한 묶음이다.

* 예수의 생명을 받은 또 다른 증거가 사랑이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명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요한일서는 그 생명을 받은 자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요일3: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준 부모를 자연히 사랑한다. 이것을 천륜이라고 한다.
하나님게로서 난 자도 하나님을 본성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물론 사랑의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여러분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 
이것이 예수의 생명을 가진 증거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를 천륜으로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우리도 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말씀으로 예배로 순종으로 헌신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들을 사랑한다.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무슨 말씀인가? 나를 낳은 부모를 사랑하면 부모에게서 난 형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육신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우리는 본성적으로 형제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형제우애를 위해 교훈도 받고 노력하고 훈련도 해 가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지만 육신을 가졌기에 작은 상처나 비교의식 등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미워하거나 질투할 때도 있다.
그 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미움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다스리고 내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끌어 올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다.

* 예수의 생명을 받은자에게는 예수의 생명력이 흐른다.
거듭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생명력이 흐르고 있다.
영혼의 생명력과 육신의 생명력이다.
영혼의 생명력으로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 힘을 얻게 된다.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사모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며 기뻐하며 주님을 섬길 힘을 준다.
기도할 힘을 주며 주님의 뜻을 순종할 힘을 준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도 주신다.

이 영적인 생명력이 우리 육신의 생명력과 함께 우리 몸에 흐르고 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예수의 생명력이 우리 몸에도 흐르고 있다.
예수의 생명을 받은 우리 영혼의 생명력이 우리 몸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 몸을 강건하게 해 주고 병을 이길 힘도 준다.
이 생명력은 평소에는 잘 느낄수 없어도 고난을 당하면 이길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곤 한다.
예수의 생명력이 죽어도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

*예수의 생명력이 죽음을 이기게 한다.
예수의 생명을 얻은자는 죽음 앞에서 확실히 들어나게 된다.
인생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예수의 생명을 가졌는가 갖지 못했는가를 확실히 알수 있게 된다.
경건한 크리스챤 화가 코러가 임종하는 날 아침이었다. 가족들은 병상으로 아침 식사를 가지고 와 먹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침 식사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 곧 천국에 가서 성찬을 받게 될 것이니까요 “ 하며 고요히 눈을 감았다. 
무디는 마지막 임종 때에 “아 어두움의 세계는 물러가고 빛의 세계가 다가 오는구나” 하였다.
예수의 생명을 가진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영할수 있게 된다.
당신도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분명히 예수의 생명을 가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가? 
그러면 거듭난 것도 믿으시기 바란다.
거듭난 것을 믿는다면 예수의 생명을 타고난 것도 믿기 바란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생명력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다.